'구르믈…' 등 최근 2년간 다섯 작품서 주인공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188㎝, 80㎏의 그가 들어서자 날렵하고 곧게, 그러나 유연하게 하늘로 뻗은 대나무가 연상됐다.

모델 출신답게 슬림하면서도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를 한껏 강조한 패션을 선보인 그는 "살을 더 빼야하는데…"라고 말해 좌중을 주눅 들게 했다.

"영화 '시크릿' 때는 더 말랐었어요. 76㎏까지가 적당한 것 같아요. 그 이상 하려고 하면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더라고요."

마흔이다. 그러나 게으름은 없다. 대학교 신입생 아들과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그는 "배우니까 관리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차승원(40)을 최근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 28일 개봉한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는 혁명가 이몽학을 연기했고, 오는 6월 개봉할 전쟁 블록버스터 '포화속으로'의 개봉도 앞두고 있다. 또 내달에는 올해 하반기 방송가의 최대 기대작인 블록버스터 드라마 '아테나 : 전쟁의 여신' 촬영에 돌입한다.

앞서 그는 지난해 SBS TV 드라마 '시티홀'과 영화 '시크릿'에도 출연했다. 2년간 다섯 작품에서 맹활약하는 것이다.


◇"배우는 연기로 말해야..그래서 작품 많이 해"

"배우가 너무 재고 눈치 보면 작품을 선택할 수가 없어요. 이 작품에서 잘못하면 저 작품에서 잘하면 되는 거잖아요. 일희일비하면 스트레스받아 못 살아요. 그래서 전 쉬지 않고 많은 작품을 합니다. '아닌 사람'하고만 일을 안 하면 되지 작품이야 잘될 때도 있고 못될 때도 있는 거지요. 그런 면에서 한국 배우들은 얄미울 정도로 너무 몸을 사리는 편이에요. 또 배우가 연기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지, 연기는 쉬면서 다른 데서 존재 이유를 찾는 것도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요. 우리는 끊임없이 대중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바로 그런 '쿨'한 생각에 그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혁명가 이몽학 역을 맡았다. 맹인 검객 역의 황정민이 부각된 이 영화에서 그는 1인자가 아니라 2인자다. 하지만, 비중은 상관없었다. 그는 이 작품을 오로지 이준익 감독만을 믿고 선택했다.

"'시티홀' 막바지 촬영할 때 이준익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주셨는데, 드라마 촬영으로 잠 못 자는 상황이라 읽을 겨를도 없었어요. 그냥 감독님과 일하고 싶어서 선택했습니다. 이몽학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죠. 그런데 중요하지 않았어요. 오직 사람을 보고 선택한 작품이니까요."

그래서 그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고마운 존재가 됐다. 당연히 주인공을 맡을 그가 한발 양보해 2인자 역을 마다하지 않았으니, 덕분에 영화는 중량감을 과시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작품은 좀 아쉬워요. 하지만, 촬영하면서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합니다. 또 이번에는 진지한 것을 했으니 나중에는 재미있는 것 하자고 이 감독님과 약속도 했고요."

◇"친구가 한명도 없어..가족.연기.운동에 올인"

이런 다작의 뒤에는 가족과 연기, 운동에 '올인' 하자는 인생관이 놓여있다.

그는 "사사로이 연락하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너무 깔끔하게 말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불쌍해 보이나요? 그런데 정말 친구가 없어요. 아마 지금 술 마시자고 연락하는 친구가 있다면 제가 현재 누리고 있는 뭔가를 포기했어야 할 겁니다. 전 18살 때 모델로 데뷔하면서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 했어요. 그때 매니저나 기획사가 어디 있나요. 버스 타고 다니면서 사진관 가 사진 찍고 인쇄소 가서 포트폴리오 만들어 에이전시에 돌리는 일을 직접 했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20년 넘게 이쪽 일을 하다 보니 친구를 만날 시간이 없더라고요. 또 일찍 가정을 꾸리고 거기에 충실하다 보니, 친구가 있어도 포기해야했죠."

연기 외의 시간은 대부분 집에서 가족과 보내고, 외출하는 것은 운동할 때 정도인 그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강렬하고 섹시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실체'다.

"어떻게 사는 게 재미있는 건가요? 제가 죽을 때까지 어떻게 살지는 모르지만 전 지금 제 모습과 삶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어요. 이게 빠그라지면 도덕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담배도 끊어야 하는 데 이건 좀 어렵네요. (웃음)"

그는 "큰 애는 미국 유학 가 있고 딸과 같이 사는데, 아내나 나나 딸 때문에 산다. 너무 예쁘다"며 웃었다.

◇"나한테 지지 말아야겠다고 결심"

이처럼 '모범적인' 삶을 사는 그의 좌우명은 "내가 나한테 지지 말자"는 것이다.

그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 것은 상관없다. 내가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무섭도록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이유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는 혁명가, '아테나 : 전쟁의 여신'에서는 테러리스트, '시티홀'에서는 대권을 꿈꾸는 야심가 등을 연기한 그는 "야망을 좇는 캐릭터가 좋고, 그만큼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 좋다"고 말했다.

"남자가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 꿈을 위해 치열하게 사는 게 멋지잖아요? 설령 그 꿈이 훗날 허상으로 밝혀지더라도 그 끝을 보기 위해 질주하는 욕망이 좋아요."


그는 "나이가 드니까 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게 된다. 옛날에는 나와 생각이 다르면 듣지도 않고 반박했다"면서 "그렇게 그렇게 내가 일하는 공간 안에서 조금씩 나도 성숙해지는구나 느끼는 것도 재미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