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
구미호

‘내가 불시착한 그곳이 지옥이라도 상관없었다. 재래식 화장실만 아니라면.’ 온수 샤워가 별천지이던 시절. 마주치는 이들은, 머리에 이와 서캐를 바글바글 얹고 다녔고, 가는 곳마다 새까맣게 빈대가 들끓었다. 1938년은 ‘의외로 결벽증’인 그를 충격적인 위생 실태로 맞이했다. 게다가. 와이파이 없다.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없다. 뭣보다, 사랑하는 지아가 곁에 없다. ‘돌아가야 한다. 내가 살던 그곳으로.’

그런데, 이놈이고 저놈이고 이연의 발목을 잡는다. 그를 죽자고 짝사랑한 여인이. 한때 둘도 없던 벗이. 그리고 잃어버린 동생, 이랑. 다시 만난 이랑에게, 이연은 자신이 미래에서 왔단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들이 다시 형제가 됐다는 사실도. '계속 미워해라. 마음을 열면 니가 다친다. 다시는... 나를 위해 죽지 마라.'

사실 이연은 식민지 경성의 풍경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 시절, 그는 아편중독이었으니까. 자신의 흑역사를 대신해, 이연은 시대의 격랑에 분연히 몸을 던진다. 조선의 '마지막 산신'으로서. 총독부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놈들이 간과한 게 하나 있다. '지켜야할 연인이 없는' 시대의 그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무자비하단 것.

바야흐로 사냥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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